2042년, DC 메리디언 힐 공원

2042년, DC 메리디언 힐 공원

2025-02-14 02:34

Status: #Child

Tags: INDEX-창작 / Ruth Kalail / Brian Dax

하이스트 영화의 한 장면 느낌으로 작성해본 글

원래 아서 버전으로 썼다가 아서의 TS 버전인 루스로 다시 고쳐 썼다.
글 자체는 엄청 오래됨. 리뉴얼도 오래됨.

2042년, DC 메리디언 힐 공원

#0. SCHEDULE

오전 6시, 뒤척이며 기상. 다시 잠.
오전 7시, 오늘 할 일을 확인하며 기상
오전 8시, 샤워, 식사 마침. 아침식사에 소일렌트 퍼플 닭고기맛이 들어있다는 것에 불평. 쓴 커피 한잔. 밴 탑승. 국도운전.
오후 1시, 털리도에서 휴식. 아시안 레스토랑에 들어가 간단하게 식사. 타마린드 폭찹과 춘권 먹음. 엉덩이에 땀띠나게 생겼다며 불평. 또 쓴 커피 한 잔.
오후 4시, 피츠버그에서 휴식. 도넛에 커피 한잔 하면서 겸사겸사 시내 구경.
오후 10시, 워싱턴 DC 도착. 메리디언 힐 공원에 차를 대고 피곤에 찌든 육체를 잠시 쉼.
오후 10시 30분, 잠시 공원 산책. 그러다 “너무 벗어나지 말라”는 명령을 받고 심한 욕설과 함께 전화 끊음.
오후 11시, 지나다니는 개미를 구경하다가 자동차로 돌아감.
자정, 차에서 자다가 뒤척이며 깸. 이건 심각한 노동법 위반이라며 불평. 서러워서 눈물 흘리다가 간신히 잠에 듦.

#1. B:\START_UP.EXE

다음날, 브라이언은 구형 르노 트래픽 패신저의 운전석에서 일어난다. 눈가와 입가는 약간 촉촉한 것이 마른 흔적이 남아있었다. 어제의 일시적 감정 고양은 조금 가라앉았다. 지금의 그는 그저 모기 물린 자국이 아주 많이 가려워 짜증이 났을 뿐이다. 차 문을 열고 닫았을 때 들어온 모양이다.
"아 씨… 뭔 늦여름에 모기야, 모기는."

그때 전뇌 HUD 한 켠에서 알람 창이 반짝이며 작은 소릴 내고 있었다.
브라이언은 짜증스레 그쪽으로 눈길을 주어 클릭한다.

"뭐야."
브라이언은 신경질적으로 쏘아붙였다.
"어, 잘 잤어? 다른 게 아니고, 그 내가 어젠 좀 심했지 뭐냐."
루스는 꾀꼬리가 지저귀는 듯한 목소리로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그래서?"
"아니, 그러니까. 어젠 내가 좀 심했다고. 사과할게."
"아, 그래? 그래, 그럼. 부를 일 있으면 다시 걸어."

브라이언은 그의 동료 루스 칼라일에게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엄연히 동업자이고 엄연히 월급 받아먹는 고용주와 피고용주의 관계임에도, 루스는 브라이언을 문자 그대로 개처럼 부려먹었다. 그리고는 뭐라고 둘러대던지? "친구니까 좀 정을 봐서" 해달라던가? 진짜 웃기는 녀석이었다.

브라이언은 이전에 우치마타 코퍼레이션에 재직해있을 때를 생각했다. 엔간한 기업에서는 보통 그 정도 되는 사람이라면 아무리 디트로이트-워싱턴 편이라고 해도 승용차를 대동하진 않았으며, 설령 그렇다 해도 따로 운전수를 붙혀주든가 하면 했지, 결코 스스로 운전하게 시키진 않았다. 비행기를 타고 왔으면 두 시간, 아니, 한 시간이면 됐는데. 그러면 엉덩이에 땀띠날 일도 없고 피로에 찌들어서 카페인을 과다하게 섭취할 필요도 없었는데. 짜증스레 미간을 찌푸리고 얼굴 주름을 한 줄 더 늘릴 일도 없었는데. 브라이언은 혼자 투덜대면서 라디오를 째려보고 있었다.

"…계속해서 속보입니다. 미국-캐나다 접경지역에서 국경을 침범하려는 시도가 발각되어 현재 입건중입니다. 이들은 브로커와 연결된 점조직 중 하나로, 지속적으로 커넥션을 이용하여 안정적으로 국경을 넘어온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점점 북쪽으로 이주하려…"
"적도 지역은 불모지가 되고…"

최근 세계는 혼란하다. 물 부족, 그리고 주요 기술 선점을 이유로 하는 전쟁은 끊이지 않고, TV와 라디오에서는 내내 어두운 소식만 전하고 있다.
게다가 요새는 테러리스트 집단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어느 기업 빌딩에 침투해서 주요 기밀을 빼내는 것 부터, 세계에 몇 없는 진귀한 보석을 훔치는 것까지… 몇번 덜미가 잡힌 적이 있었지만, 그들 각자의 배후가 누구인지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채로 몇 가지 정황적 증거만이 남아있는 상황이었다. 그들의 동기도 물론 알 수 없었다.

브라이언의 동료인 루스 칼라일은 그 전말을 알고 싶어했다. 루스는 요즈음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악행들이 전부 한 사람, 혹은 두 사람의 계획 하에 일어나고 있다 믿어 의심치 않는다. 오늘도 브라이언과 루스 둘은 그 예의 X와 Y의 덜미를 잡기 위해 워싱턴 DC에 와있는 것이다. 영사관 내 데이터베이스에 물리적으로 침입해 그들의 기록을 읽어내기 위해서. 브라이언으로서는 대단하신 양반네의 계획이니, 그저 어쩔 수 없이 따라 줄 뿐이었다.

전뇌 HUD가 다시 반짝인다.
'슬슬 시작한다. 신호와 함께 영사관 안으로 침입하겠어. 네 투명 망토는 잘 빌릴게.'
외부 카메라로 보이는 루스는 비치듯 투명한 망토를 과시하듯 두 팔로 든다. 그것을 한바퀴 빙 돌려 제 몸에 감싸자, 망토는 주변 풍경에 완벽히 동화되어 일렁이는 잔상마저 비치지 않게 된다.

그 망토에 쓰인 기술은 특급 기밀에 부쳐져있다. 범죄자가 될 각오 끝에 어떻게 얻어낸 건데, 저렇게 당당하게 가져가서 멋대로 써도 되는건지.
"에휴."
차 안에서는 망연한 한숨소리만이 나직이 울려퍼진다.

#2. BREACHING

메리디언 힐 공원은 영사관으로부터 조금 떨어져있었다. 차로 대략 20분 정도. 그 정도면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충분히 이동할 수 있는 거리라 생각하고, 브라이언은 뒷자리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선선한 늦여름의 햇살이 나무 그늘에 가려 쾌적한 환경을 만들어주고 있었다. 물론, 소금물 탱크 안에 들어가면 그런 "환경" 따윈 아무 의미 없겠지만.
브라이언은 곧장 풀 다이브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원래대로라면 탱크 바깥에서 누군가 지켜보고 있어야 하는데 비행기 삯도 안주는 구두쇠가 그런 걸 붙혀줄 리가 없었다. 이러다간 주차딱지 떼러오는 사람 조차도 막을 수 없는데 말이지. 한숨 섞인 헛웃음을 지으며 브라이언은 관 속으로 들어간다.

브라이언이 항상 관이라고 부르곤 하는 그 기계 안은 최고급 수면 클리닉과 같다. 관에 들어가면 급속도로 잠에 빠져 의식은 몸으로부터 멀어지고, 점차 감각을 느끼기 힘들어진다. 기본적으로는 밴 안에 설치되어있는 사이버덱과 연결되어있다. 그리고 관의 신경다발들이 사이버덱을 통해 브라이언의 의식을 전송하는 덕분에, 브라이언은 전체적으로 푸른 색채가 감도는 VR(Virtual Reality)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이다.
"들어왔다."
오랜만에 아바타를 움직이며 브라이언은 말했다. 가상 공간은 확실히 몸이 가볍다. 팔을 이리저리 움직여봤다. 평소같았으면 당연한 오른 다리의 환상통이나, 만성적인 근육통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 예정대로 나 혼자 들어가고 있다. 미리 동선을 봐두니 좋군."
"소피아를 쓸 일이 없었으면 하는데. 또 병신같이 허풍떨다 걸리지 말라고. 네 조수잖냐."
"알고있어."

브라이언은 외부측 카메라를 통해 영사관 근처 골목에 서있는 한 소녀를 보았다. 몸에 안 맞는 펑퍼짐한 4XL 후드 집업과 청바지를 입어, 소매는 나풀거리고 밑단이 바닥에 질질 끌렸다. 게다가 뒤집어 쓴 후드 안쪽으로는 금색의 머리칼과 시퍼런 눈동자를 한, 앳되어보이는 얼굴…
소녀는 갑자기 싱긋 웃더니, 어떻게 알았는지 이쪽을 향해 손을 흔든다. 방방 뛰면서 소매자락을 늘어뜨린 채로… 그 사이로 묵직한 철근다발같은 대형 건틀렛이 보였다면 착각은 아닐 것이다.

'에휴, 저 어린 것을… 소년병이야, 뭐야?'
브라이언은 혀를 끌끌 찼다.

"들어왔다. CCTV룸은 생각보다 허술하군. 교대근무자를 가장했다."
루스의 목소리가 브라이언의 HUD에 표시되었다.
"그래. 이제 메모리 꽂아야지."
"…포트가 어디있지?"
"…거, 아래 안보여?"
"어두워서 안보여… 젠장."
"…드론이라도 먼저 놔."

그때,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마이크에 또 다른 남성의 음성이 들린다.
"나참, 손전등을 놓고가다니… 야, 뭐하는거야?"
"어어? 아냐! 아무 것도!"
"그 아래에서 뭐하고 있는건데? 굉장히 다급해 보이는군."
"아니, 이건…"
"잠깐, 그러고보니 넌 본 적 없는 얼굴인데."

좆됐다.
"침착해. 정신차려!"
브라이언은 다급하게 외친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은 냉담하다.
"침착은 개뿔. 들켰어, 이 녀석아."

마이크 너머에서는 이미 침착이고 뭐고 없었다. 이미 몇 차례 서로 주먹다짐이 오가고 있는 모양이었다. 들켰다고 했으니 상대 경비는 분명 무전기로 침입을 알렸을 것이다. 일단 장치를 꽂아놨으니 침입 시도는 어렵지 않지만, 들킬 위험을 각오하고 일을 처리해야만 한다.
"야이… 내가 너랑 다시는 같이 일 하나 봐라. 소피아!"
브라이언은 다급히 조수를 부른다.
"언제든지 불러만 주세요!"
기운차게 대답하는 소피아. 그의 천연덕스러운 목소리가 브라이언은 괜히 밉게만 느껴졌다.

#3. CONFLICT

CCTV 화면을 통해 보이는 루스는 잔뜩 움츠러든 몸짓으로 수세에 몰려있었다. 아무리 너스레를 떨어본다 한들, 일단 의심을 산 이상 자기보다 40cm는 더 작은 루스같은 어린 여자는 펀치 한 방이면 나가떨어질 게 분명하다.

거구의 경비는 다급하게 무전기로 비상을 알리고는, 진압봉을 든 채 달겨들어 내리찍으려 했다.
“…어?”
내리찍으려 했다. 했는데… 기이하게도, 이 경비는 달려오던 그 힘 그대로 넘어져, 이상한 자세로 허리가 꺾여버렸다. 루스는 그 짧은 틈에 잽싸게 뒤로 누워 경비의 팔을 잡고는, 힘껏 뒤로 차올려 넘겨버린 것이다.
곧 이어서 루스는 책상에 ㄴ자 형으로 쓰러진 경비의 옷깃을 잡아 감싸안듯이 하여 목에 조르기를 먹였다. 경비는 그 덩치가 무색하게 손톱으로 마구 할퀴며 저항했지만, 이미 힘은 빠르게 풀려나가고 있었다.

"아야야… 이 친구 뭐, 레슬러도 아니고 등치가 이래 산만해, 이거.”
"지금 장난 놀 때냐 이 새끼야."
"난 마스터마인드지 사기꾼이 아니라고."
"하… 빨리 연결이나 해. 중계할거다."
루스는 손으로 OK 모양을 만들며 구석에 나자빠진 경비의 골통을 발로 후려갈겼다.

브라이언은 한숨을 내쉬며 자기 일에나 집중해야겠다고 생각한다. 곧장 브라이언은 중앙제어시스템을 해킹하려 시도한다. CCTV 룸 컴퓨터 포트에 꽂은 메모리를 통해 중계하여 영사관 서버에 접속할 예정이었다.

'환영합니다! 암호를 입력하세요.'
'암호 따윈 네 집 화장실 들어갈 때나 쳐.'

중계를 통해 시스템에 접근할 수 있다는 것에 안도하며, 브라이언은 브루털 포싱을 시도한다. 0부터 시작해서 *까지 모든 문자를 대입하여 비밀번호를 알아내는 이 무식한 방법은 보통의 컴퓨터로는 밤낮을 새워 며칠을 꼬박 해도 불가능하겠지만, 브라이언의 두개골 내에 탑재된 카스카벨 베스파-20의 획기적인 성능 덕분에 불과 10분이면 가능했다.

"앞으로 10분이면 돼.”
"OK. 항상 신세지네, 그래."
"돌아오면 몇대 좀 맞자."

약 9분 쯤 지났을 무렵이었다. 이제 앞으로 1분이면 브라이언은 중앙시스템관리권한을 획책하고 CCTV 기록을 획득하는 것은 물론, 방화셔터를 내리거나 화재경보를 울리는 등의 방해공작을 통해 탈출을 간접적으로 도와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비록 깔끔하진 않을 지라도, 일단 계획은 달성하게 된다.
그러나 브라이언은 약간의 이변을 느낀다. 분명 처음의 예상대로라면 앞으로 1분이 남아야 하는데, 소프트웨어의 예상하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고 있는 것이다. 분명 진행시간은 9분을 넘겼는데도!

"BLACKICE다!"
영사관 씩이나 되는 곳이어서 그런지, 그 악명높은 트리거 방화벽 프로그램이 개입하고 있었다. 9분을 넘긴 채로 세션이 진행되지 않자 이변을 감지한 프로그램이 수색을 시작할 것이다. 브라이언은 곧장 은폐 프로그램을 실행해서 자기가 침입한 내역을 지워나가기 시작했다. 복수의 프로그램을 동시에 실행하자 처리속도가 조금 느려지고 있었다.
"절대 잡히지 않는다. 절대 항복하지 않아!"
하지만 어느 순간 덜미를 잡히고 만다. 미처 지우지 못한 로그인 세션 내역이 남아있었다. BLACKICE는 그리를 통해 접근하고 있었다.

"젠장…"
브라이언은 방화벽 프로그램을 실행했다. BLACKICE에게 침투당하면 풀 다이브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는 그냥 끝나지 않을 것이다. 접근이 방해받는 것은 물론이고 아예 뇌가 바싹 타버릴 것이다. 그렇게 되면 영구적인 장애를 가지게 될 것이 분명하다. 브라이언이 아는 /h/의 해커 중에도 그렇게 뇌가 타들어가서 중추신경에 장애를 입어 걷지 못하거나 말을 못하게 된 사람이 몇 명 있었다. 브라이언은 그렇게 되고 싶지 않았다. 절대!
브라이언의 전뇌는 이미 한계에 달했다. 브루트포싱만으로도 충분히 메모리를 많이 먹는 작업이었는데, 그걸 하면서 동시에 접속한 노드의 입출구 내역도 조작하고, 계속적으로 방화벽을 켜놓아야 하니 전뇌 내 점유율은 점점 높아져만 갔다.

시간을 알리는 메세지 로그가 나타난다.
"이제 10초…"
드디어. 뇌가 바싹 탈 위기를 넘기고, 동료의 어리석은 실수에도 일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다. 너무도 피곤했고, 잠도 제대로 못 잤으니 충분한 휴식을 취하는 게 제일 중요했다.

'돌아가면 알버트 뱃살 쓰다듬어야지.'
브라이언은 무심코 긴장을 풀게 된다. 그와 함께, 천정부지처럼 높아져간 점유율은 폭주하여 지연이 생겼고, 그 틈을 놓치지 않은 BLACKICE의 자동 역침투 프로그램은 그대로 브라이언의 전뇌로 침투한다.

"끅, 끄윽… 썅!"
악다구니를 써보지만 난생 처음 겪어본 일이라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었다. 물론 뇌에 통점은 없으니 고통을 느낄 수는 없다. 하지만 그렇게 공격을 받고 나면 전뇌공간은 뒤틀린다. 그에 따라, 그의 아바타의 피부, 살점, 근육, 모든 것이 뒤틀리는 것이다.
'최고관리자 권한을 확인했습니다. 접속을 승인합니다.'
비록 몇 초에 지나지 않았지만 브라이언의 두뇌 일부가 타들어갔다. 이 피해의 후유증은 평생을 갈 것이다. 평생.

돌아가서 루스를 때릴 힘이 남아있을까. 브라이언은 생각했다.

#4. WRAP UP

풀 다이빙을 마친 브라이언은 약간의 두통을 느낀다. 의식은 마치 터널 속에서 빠져나오는 것처럼, 처음에는 어두웠다가 점차적으로 희미한 빛의 줄기가 강해지기 시작해 의식을 서서히 회복하기 시작한다.
다이브에서 빠져나온 일순간 상쾌해지면서도 순간적인 낙하감에 가까운 타격감을 느꼈다. 뭐랄까, 마치 황금으로 싼 위스키 병에 머릴 강타당한 느낌이랄까. 현실 세계로 돌아오자 선선한 늦여름의 밤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브라이언은 운전석으로 돌아간다.
메리디언 힐 공원에서 영사관 주차장으로 들어간 브라이언은 동료를 기다린다.
소피아는 애초에 엮이지 않았으니 나중에 따로 합류할 것이다. 부러운 녀석. 어지간한 경우는 내 선에서 끝나니까 넌 별로 할 일이 없겠지. 브라이언은 갑자기 약간 억울해짐을 느꼈다.

곧이어 조수석에 올라탄 누군가. 덕분에 차량이 약간 기울어진다. 어쩐 일인지 루스가 입은 경비복은 큼지막한 먼지 덩어리가 가득 붙어있었다.
"출발, 출발출발출발."
"누가 네 운전사인줄 아냐, 하."
그렇게 불평하면서도 브라이언은 얌전히 운전대를 잡는다. 그대로 밴은 지하주차장을 빠져나온다.
"드론은 회수했나?"
의아해하는 브라이언에게 루스는 천연덕스레 웃으며 거미처럼 생긴 다각형 드론을 보여준다. 하드포인트 끝에는 침투용 소프트웨어가 담긴 USB가 단단히 쥐어져 있다.
"하아."

다소간의 침묵 후, 문득 브라이언의 뇌리에는 무언가가 스쳐지나간다.
"너 몇대 맞기로 했지, 분명?"
"아니? 그런 기억은 없는걸."
"맞잖아, 이 개같은… 너 대가리 딱 대"

운전대를 잡으면서도 오른손으로 루스를 때리려고 노력하는 브라이언.
그러나 몇번 옥신각신 하다가 사고가 날 뻔 하자 할 수 없이 멈춘다.

돌아가서 때려야지.

References